본문 바로가기

전생의 기억/소설

귀담 - 손톱01

-손톱-


 난 어렸을때부터 얼마전까지 손톱이 손가락살 전체를 뒤덮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심하다. 워낙 심한탓에 손톱좀 물어뜯어봤다?

싶은 사람들은 다들 공감할텐데, 뜯을 손톱이 없게되면, 손톱 옆의 살을 뜯기도 하게되고,

자연스럽게 손가시가 많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내 손톱은 항상 못생기고 물이 조금만 닿아도 쓰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갈줄 알았건만, 최근에 와서 나는 손톱을 더이상 뜯지 않는다.

작년 여름의 일이였다.


24..23..22..21...

'하.. 우리집 아파트는 엘레베이터가 왜이렇게 느린거야..'

 오래된 아파트의 엘레베이터는 다들 그러듯 체인긁히는 괴음과 함께 한층 한층 내려오고 있다.

이 따분한 시간동안에 딱히 할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필 엘레베이터 앞에만 서면

오줌이 마려운것도 참 희한하다. 

다리를 모델포즈로 꼬고, 벽에 기대어 엘레베이터가 어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나의 인내심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자연스럽게 엄지 손가락이 입가로 향한다.

뜩...딱...똑...


'툿!'

손톱이 깔끔하게 잘 뜯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닥을 향해 지나가는 벌레들 요깃거리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입에 물려있던 손톱을 뱉었다.


간혹 자기가 물어뜯은 손톱을 삼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내 취향은 아닌것 같다.

마치 껌을 삼키면 맹장염에 걸린다는 괴담처럼, 손톱을 삼키면 꼭 위에 손톱이 갈고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스르륵'

아파트 자동문이 열리면서 아저씨 한분이 들어오신다. 공장 작업복을 입고계시는데,

아마 근처 공단에서 일하시는 우리 아랫집에 사시는 분이지 싶다.


띵!

엘레베이터가 드디어 도착했다. 저 아저씨는 내가 미리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러놓은 탓에

이 따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듯 하다. 마음 한편으로는 나혼자 타서 재빨리 닫힘 버튼을

갈기고 싶은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학생 오랜만이네?"

"아저씨 안녕하세요."

딱히 할말이 없어 인사만 하고 아저씨도 퇴근하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나한테 말이나 좀 붙여볼까

싶은 생각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 샤워하고 따뜻한 밥에 된장국이나 말아서 허기를 달래고 싶어하시는 듯 하다.

슬쩍 쳐다보니 내 덕에 엘레베이터를 바로 탈수 있어서 조금은 편안하신지 약간의 흐뭇한 미소를 내게 보이신다.


이 좁디 좁은 공간안에 있으니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마음은 다급해지고, 

이번에는 검지 손가락을 입가로 향함과 동시에 내가 기저귀를 차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학생 손톱뜯는 버릇이 있나봐?"

"네?"


"우리 딸이 손톱을 하도 물어뜯어서 많이 혼내거든. 학생도 왠만하면 손톱 물어뜯는 습관좀 고쳐봐~

이건 내가 우리 공장사람한테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바닥에 떨어진 남의 손톱을 줍는 이상한 놈을 본적이 있다나봐."


"아... 네 ㅎ. 고치려고 몇번 시도는 해봤는데, 습관이 되서 저도 모르게 입에 넣고 있더라구요"


'띵!.. 9층입니다.'


"다음에 또 봐 학생!"

"안녕히 가세요..."


우리집은 10층이다.

'탁탁탁탁!'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몸을 비비 꼬면서 엘레베이터가 빨리 움직이기를 염원하며 닫힘 버튼을 마구 갈겼다.


'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내 몸무게가 1kg은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마음의 여유가 찾아오자, 엘레베이터 안에서 들은 이야기가 얼핏 기억이 난다.

남의 손톱을 주워간다니... 쥐새끼가 손톱먹고 사람되는 이야기 마냥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살려주세요!! 으힉! 푹...

꺄악!! 퍽...!!

뭐..뭐야! 핏...! 웁!

나는 누워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푹신푹신한 무언가 위에 내가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와, 배, 다리 등에서 터져나오는 핏망울이 내 얼굴에 튀기고 있다..

'으으.. 뭐지? 뭐야? 뭐냐구 이상황은!'

정신을 차리자,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공포에 질려 이 이상한 공간을 뛰어다닌다.

발밑이... 푹푹 빠지고, 가라앉는다. 느낌이 마치 솜과 흡사하다.

이 솜같은 공간은, 이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흡수하여, 흰색부분 보다는, 검붉은 색의 영역이 대부분을 자리잡고 있다.